뱀의 다양한 상징성

신화시대 그리스의 의신 아폴론에게는 아스클레오피오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 아폴론은 이 아들을, 당시의 용한 의사이자 현인 이었던 케이론에게 맡겨 의술을 가르치게 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케이론의 가르침을 받아 대단한 의사가 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트라카라는 도시에다가 요즘의 의과대학 겸부속병원 비슷한 걸 세우고 의술을 가르치는 한편 환자를 보았는데는, 어찌나 용했던지,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도 능히 살려낸다’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이 아스클레피오스는 실제로 죽은 자를 살려내었다가, 이승의 이치와 저승의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밉게 본 제우스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제우스가 던진 불벼락에 맞아죽은 것으로 신화는 기록하고 있다. 이 아스클레오스에게는 트로이아 전쟁 때 종군한 두 아들 이외에도, 이아소, 판아케아, 아이글레, 휘게이아, 이렇게 네 딸이 있어서 딸들은 아버지를 도와 간호사 노릇을 했다. 맏딸 <이아소>의 이름은 <의료>라는 뜻이고, 둘째 <판게이아>의 이름은 <만병통치>, 셋째 <아이글레>의 이름은 <광명>, 넷째 <휘게이아>의 이름은 <위생>이라는 뜻이다 .이 네자매의 이름 중 막내인 <휘게이아>의 이름은 지금도 의과대학에서 쓰이고 있다. <하이지닉스hygienics(위생학)>라는 말은 <휘게이아> 이름을 그 어원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의과대학은 수많은 명의를 배출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름 높은 명의가 바로 오늘날 <의성>으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이다. 의과대학과 그 부속병원과 아스클레피오스의 사당을 두루 겸하는 곳에다 제관들은 흙빛 뱀을 기른것으로 전해진다. 제관들이 이 흙빛 무독사를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팡이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뱀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인 흙빛 무독사인 것이다. 의술을 상징하는 엠블렘(표상)에 뱀이 그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뱀은 결국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리스 신화는 뱀을 일단 죽음의 상징으로 기록한다. 의식 아폴론은 어린 나이에, 죽음을 상징하는 거대한 뱀 파이썬을 죽인다. 바로 이 때문에 아폴론은 <퓌티온>이라는 별명을 불리기도 한다. <파이썬을 죽인자>, 즉 <죽음의 정복자>라는 뜻이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생후 아흐레 만에 두 마리의 뱀을 죽이고, 장성한 뒤에는 머리가 아홉 개나 되는 거대한 물뱀 휘드라를 죽임으로써 인간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해낸다. 헤라클레스 역시 <헤라클레스 칼리니코스>, 즉 <죽음으로부터의 빛나는 승리자 헤라클레스>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인 오르페우스와 신부 에우뤼디케의 이승과 저승에 걸친 긴긴 다라마는 한 마리의 뱀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이 의미심장한 드라마는 신부 에우뤼디케가 뱀에게 발뒤꿈치를 물리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저승의 나라, 곧 몇계의 문을 지키는 괴악한 번견 케르베로스의 갈기, 의롭지 못한 자를 찾아 저승으로 데려가는 증의 여신 에뤼뉘에스의 머리카락, 그 얼굴을 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저 무서운 요괴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올올이 뱀이다. 파충류 시대에 인간의 유전자에 찍혀버린, 파충류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 그리스 신화는 죽음의 상징으로 무수한 뱀을 등장시킨다.

그리스 신화는 뱀을 재생의 상징으로 기록하기도한다. 폴리이도스라는 사람은 죄를 지어 석실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가, 어느날 우연히, 수뱀이 몸에 약초를 문질러 죽은 암뱀을 소생시키는 것을 본다. 다음날 석실에는 그 나라 왕자가 뱀에 물려죽었다는 소문과, 왕자를 살려내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린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폴뤼이도스는 뱀이 쓰다 남긴 약초를 거두어 왕자를 살리고 자신도 석실에서 살아나온다.

구약성경의 요나가 그랬듯이, 그리스의 영웅 이아손도 거대한 뱀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사흘만에 새 새명을 얻어 나오고, 헤라클레스도 거대한 뱀이 삼키는 바람에 그 뱃속에 들어가 있다가 사흘 만에 그 뱀의 배를 가르고 나온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을 목격하는데서시작된 것일까? 그리스 신화는 재생의 상징으로 무수한 뱀을 등장시킨다. 죽음의 상징, 재생의 상징,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중재자의 상징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의 세가지 다른 모습이다. <오르훼와 유리디스>로 불리기도 하는 저 유명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뒤케 이야기가 어쩌면 이 간단하지 않은 이치를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는 갓 결혼한 신랑과 각시이다. 신랑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산 몸으로 저슨에 내려가 저승왕과 담판하고 천신만고 끝에 신부를 찾아나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승에 도달하기까지 각시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금기를 지키지 못해서 신부를 놓치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이들의 팔자가 왜 이렇게 기박한가? 이 신화는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가? 신랑의 이름 ><오르페우스는>는 <어둠><이라는 말에서 생 긴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어둠에 가까이 닿아 있는 가인이다. 신부의 이름 <에우리뒤케>는 바로 <넓은 것을 다스리는 여자>라는 뜻이다. 넓은 것은 무엇인가? 에우리뒤케의 별명인 <아르기오페>는 <얼굴이 흰 여자>라는 뜻이다. 얼굴이 흰 것이 무엇인가? <넓은 것을 다스리는 얼굴이 흰여자>는 결국 무엇인가? 이 여자가 뱀에 물려 저승에 갔다가는 신랑의 손에 이끌려 저승을 나오고,  나오다가 다시 저승으로 되돌아갔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넓은 것을 다스리는 얼굴이 흰 것>은 달이다. 차고, 기울고, 이우는 달이다. 달에게 이러한 운명을 부여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뱀이다. 뱀은 이로써 달의 운명과 합류한다. 뱀이 그렇듯이, 달이 죽음과 재생과 순환의 상징인 것은 이 때무이다. 뱀을 죽음과 재생과 순환의 상징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그리스 신화뿐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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